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
by 운영자 2016.02.25
요즘 각 학교에서 졸업식이 한창이다. 그런데 중, 고교 졸업식 풍경이 옛날하고는 사뭇 다르다. 옛날에는 졸업식 날 교복에 밀가루를 뿌리고 교모를 찢고 속된말로 난잡한 졸업식 광경이었다. 그러나 요즈음 졸업식은 선후배가 어우러져 끼를 마음껏 발산하는 놀이마당의 졸업식장이 되었다. 헤어짐의 아쉬움에 눈물을 흘리는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렇다고 사제지간 정이 메마른 것은 아니다. 필자가 본 졸업식장 광경은 나름대로 사제지간에 정을 나누는 모습이었다. 학생들이 용돈을 아껴 마련한 장미꽃다발, 케이크, 그 밖에 여러 가지 선물로 은사에 대한 존경과 사랑의 징표를 건네는 모습에서 필자가 평소에 생각했던 중, 고교생들의 모습과는 다른 모습이어서 흐뭇했다.
말썽만 부리는 그런 학생들의 모습만이 아니었다.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임금과 스승과 아버지는 한 몸이라는 말로 나라에 대한 충성과 스승과 아버지에 대한 존경심을 강조한 것이라 하겠다. 얼마 전 한 고등학교에서 학생이 선생님에게 폭력적인 행동을 한 것이 언론에 보도돼 큰 우려를 가져왔다. 그 소식을 접한 사람들은 학생, 학부모 할 것 없이 남녀노소가 많은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과연 이러한 학생에게만 돌을 던져야만 할까? 또 얼마 전 성직자가 자식을 폭행해 숨지자 집안에 수개월을 방치한 사건, 이뿐인가 며칠 전 뉴스에 딸을 때리고 밥을 굶겨 숨지자 암매장한 비정한 엄마의 모습이 공개됐다.
하지만 이런 사건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최근 몇 년간만 하더라도 학생이 선생님에게, 자식이 부모에게, 젊은 사람이 노인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비슷한 소식이 언론을 통해 전해졌다. 사회가 가지고 있는 상식과 규범에 반하는 것은 그 사회구성원들에게는 충격적일 수밖에 없다.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라는 유교적 이념 속에서 오랫동안 살아왔던 우리 민족이기에 이런 일탈적인 행동은 충격일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을 과연 어떻게 받아들이며 생각해야 할까? 단순한 학생의 잘못일까? 학생을 잘못 키운 부모의 잘못일까? 학생을 잘못 지도한 교사의 잘못인가? 학생들의 교육을 잘못 이끌어가는 교육체제의 잘못일까? 한 개인의 잘못된 일탈로 보아 넘겨야 할까?
물론 사람마다 관점이 다를 것이고 그만큼 대책도 다양하다. 여러 가지 고민 중에 하나 생각해 볼 만한 것이 사회의 변화이다. 조선 왕조 500년 역사와 함께 아버지가 주도하는 노동을 통해 농경사회의 생산물을 생산했다. 이런 기반의 사회에서 임금과 아버지의 권위는 엄청날 수밖에 없다. 어릴 때 그 속에서 학습된 권위는 우리의 의식 속에 뿌리깊이 자리한다. 하지만 근대사회는 몇 십년간 산업화로 급격히 탈바꿈했다. 우리사회 역시 농경사회에서 자본주의 사회로의 변화의 바람을 피할 수가 없었다. 세습이 아닌 국민의 손으로 대통령의 자리를 만들게 된 것이다. 이제 세상은 가장이 주도하던 농사 대신에 컴퓨터로 대표되는 첨단기기를 이용한 산업이 주를 이룬다. 가장의 지식과 경험으로 젊은 세대를 따라가기에도 벅차다. 당연히 최첨단 사회에서 가장이 가지는 권위는 농경사회처럼 절대적일 수는 없다. 이렇게 사회 전반의 변화에 따라 그 사회의 인식이 바뀌는 것도 당연하다.
개인이 모여 이루어진 것이 사회이고 그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개인이다. 한 개인을 볼 때도 급변한 사회를 염두에 두고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농경사회에서 한 가장이 가지는 권위는 사회전반의 지지를 얻으며 절대적인 위치에 있었다. 권위를 어릴 때부터 학습한 사람은 개념이 생겨 부모에서 스승, 임금, 국가로 확장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하지만 이를 학습한 적이 없는 사람에게 권위의 확장은 불가능해 보인다. 이렇게 권위라는 개념을 학습하지 못한 세대에게 무조건 군사부일체라는 말만 강요한다면 낫 놓고 기억자도 모르는 사람에게 셰익스피어 고전을 읽으라는 말과 같다.
자라나는 세대의 교육을 위해서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로 대표되는 기존의 가부장적 권위를 대체할 무엇이 필요하다. 그것이 사랑이든, 지식이든, 인성교육이든 사회가 함께 고민해 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쉽지는 않지만 우리 대한민국의 천년지대계를 이어갈 다음세대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남춘천중학교
운영위원장 이세현
그렇다고 사제지간 정이 메마른 것은 아니다. 필자가 본 졸업식장 광경은 나름대로 사제지간에 정을 나누는 모습이었다. 학생들이 용돈을 아껴 마련한 장미꽃다발, 케이크, 그 밖에 여러 가지 선물로 은사에 대한 존경과 사랑의 징표를 건네는 모습에서 필자가 평소에 생각했던 중, 고교생들의 모습과는 다른 모습이어서 흐뭇했다.
말썽만 부리는 그런 학생들의 모습만이 아니었다.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임금과 스승과 아버지는 한 몸이라는 말로 나라에 대한 충성과 스승과 아버지에 대한 존경심을 강조한 것이라 하겠다. 얼마 전 한 고등학교에서 학생이 선생님에게 폭력적인 행동을 한 것이 언론에 보도돼 큰 우려를 가져왔다. 그 소식을 접한 사람들은 학생, 학부모 할 것 없이 남녀노소가 많은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과연 이러한 학생에게만 돌을 던져야만 할까? 또 얼마 전 성직자가 자식을 폭행해 숨지자 집안에 수개월을 방치한 사건, 이뿐인가 며칠 전 뉴스에 딸을 때리고 밥을 굶겨 숨지자 암매장한 비정한 엄마의 모습이 공개됐다.
하지만 이런 사건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최근 몇 년간만 하더라도 학생이 선생님에게, 자식이 부모에게, 젊은 사람이 노인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비슷한 소식이 언론을 통해 전해졌다. 사회가 가지고 있는 상식과 규범에 반하는 것은 그 사회구성원들에게는 충격적일 수밖에 없다.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라는 유교적 이념 속에서 오랫동안 살아왔던 우리 민족이기에 이런 일탈적인 행동은 충격일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을 과연 어떻게 받아들이며 생각해야 할까? 단순한 학생의 잘못일까? 학생을 잘못 키운 부모의 잘못일까? 학생을 잘못 지도한 교사의 잘못인가? 학생들의 교육을 잘못 이끌어가는 교육체제의 잘못일까? 한 개인의 잘못된 일탈로 보아 넘겨야 할까?
물론 사람마다 관점이 다를 것이고 그만큼 대책도 다양하다. 여러 가지 고민 중에 하나 생각해 볼 만한 것이 사회의 변화이다. 조선 왕조 500년 역사와 함께 아버지가 주도하는 노동을 통해 농경사회의 생산물을 생산했다. 이런 기반의 사회에서 임금과 아버지의 권위는 엄청날 수밖에 없다. 어릴 때 그 속에서 학습된 권위는 우리의 의식 속에 뿌리깊이 자리한다. 하지만 근대사회는 몇 십년간 산업화로 급격히 탈바꿈했다. 우리사회 역시 농경사회에서 자본주의 사회로의 변화의 바람을 피할 수가 없었다. 세습이 아닌 국민의 손으로 대통령의 자리를 만들게 된 것이다. 이제 세상은 가장이 주도하던 농사 대신에 컴퓨터로 대표되는 첨단기기를 이용한 산업이 주를 이룬다. 가장의 지식과 경험으로 젊은 세대를 따라가기에도 벅차다. 당연히 최첨단 사회에서 가장이 가지는 권위는 농경사회처럼 절대적일 수는 없다. 이렇게 사회 전반의 변화에 따라 그 사회의 인식이 바뀌는 것도 당연하다.
개인이 모여 이루어진 것이 사회이고 그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개인이다. 한 개인을 볼 때도 급변한 사회를 염두에 두고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농경사회에서 한 가장이 가지는 권위는 사회전반의 지지를 얻으며 절대적인 위치에 있었다. 권위를 어릴 때부터 학습한 사람은 개념이 생겨 부모에서 스승, 임금, 국가로 확장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하지만 이를 학습한 적이 없는 사람에게 권위의 확장은 불가능해 보인다. 이렇게 권위라는 개념을 학습하지 못한 세대에게 무조건 군사부일체라는 말만 강요한다면 낫 놓고 기억자도 모르는 사람에게 셰익스피어 고전을 읽으라는 말과 같다.
자라나는 세대의 교육을 위해서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로 대표되는 기존의 가부장적 권위를 대체할 무엇이 필요하다. 그것이 사랑이든, 지식이든, 인성교육이든 사회가 함께 고민해 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쉽지는 않지만 우리 대한민국의 천년지대계를 이어갈 다음세대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남춘천중학교
운영위원장 이세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