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치 | 소양고개길26
문의 | 254-3203
운영 | 매일 11:30 ~ 21:00

113년 만에 가장 늦은 ‘봄 눈’을 경험한 2020년이다. 서울에서 진눈깨비가 내린 4월 말이었다. 예상치 못해 더 추웠다. 한겨울 추위는 난방도구며, 두터운 외투, 핫팩 등으로 단단히 준비가 가능하지만, 난데없는 추위는 봄옷으로 가볍게 입은 사람들의 허를 찔렀다.

하루 종일 달달달 떨었더니 뜨끈한 국물이 절실해졌다. 아주 팔팔 끓는 고기 국물을 떠올려봤다. 역시 이럴 때는 갈비탕이다. 떠올리기만 했을 뿐인데 절실해진다. 이상한 날이었다. 가장 근처의 갈비탕 집을 갔으나, 문을 닫았고 또 인터넷으로 급하게 찾아간 곳은 사정이 있어 갈비탕 메뉴를 안 하고 있었다. 두 번째 갈비탕 집에서 우리의 간절함을 읽었는지 ‘봉운장’을 추천했다. 갈비탕집이 추천하는 갈비탕집이라니, 신뢰가 생겼다. 1952년에 개업해 70여 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소갈비를 다뤘다니, 가늠할 수 없는 내공이 기대됐다.

세 번 만에 만난 갈비탕, 평소라면 메뉴를 바꾸거나 포기했을 텐데 그날은 달랐다. 우선 따뜻하게 난방을 켜준 바닥에 앉아 반가운 갈비탕을 맞이했다. 뽀글뽀글 끓는 국물을 한 입, 꽃샘추위에 얼었던 몸이 사르르 녹는다. 식히기 위해 넓은 접시에 한가득 담기는 갈비는 군침이 나게 한다. 연한 살코기에 고추냉이간장을 콕 찍어서, 편하게 갈비를 뜯는 즐거움이 있다. 밥을 후루룩 말아 먹으니 부드러운 국물의 감칠맛이 입 안 가득 감돈다. 음식의 위로라고나 할까. 든든한 고기와 부드럽고 뜨거운 국물이 쉴 새 없이 숟가락질하게 한다. 특히 환상 조합을 이루는 깍두기와 김치는 빼놓을 수 없는 조연이다. 갈비의 양이 푸짐하다보니, 계속 고기만 먹다가는 느끼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잘 익은 깍두기 한 입이라면 무한정 먹을 수 있을듯하다.

마지막으로 국물에 파가 섞여 나온 매콤한 장을 풀어서 얼큰하게 즐긴다. 갈비탕 본연의 매력이 사라지는 듯해 처음부터 맵게 먹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에는 색다르게 변한 국물이 주는 재미가 있다.

이날의 한 그릇은 내게 평소 먹던 갈비탕 한 끼가 아니었다. 기억 속에 콕 박혀, 비슷한 날씨가 되면, 근처를 지나갈 때면 자동으로 기억이 재생되는 음식의 책갈피가 됐다. 오랜 세월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이곳의 갈비가 ‘책갈피’ 역할이 됐을까. 멋있는 일이다. 세월이 지나도 같은 음식이 한 자리에 오래 머물러 있는 것은.

이계림 기자 cckcr7@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