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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나무

음식나무 : 이기자의 냠냠

육수 속에 띄운 세상 평양냉면

육수 속에 띄운 세상 평양냉면

by 운영자 2020.03.30

위치 : 영서로 3036
문의 : 254-3778
운영 : 11:00 ~ 19:00 / 둘째·넷째 주 화요일 휴무(재료 소진 시 조기마감)
‘평양냉면’이야말로 어른의 음식이 아닐까 싶다. 어릴 적 처음 아버지를 따라와 먹었던 이 냉면에 대한 기억은 ‘이게 뭐야?’였다. 어린이 입맛에는 그저 밍밍한 육수라고 생각이 들었을 터였다. 한때 열풍처럼 불었던 평양냉면 바람에 휩쓸려 다시 먹어봤을 땐 그 때 그 맛이 아니었다. 시간이 흐른 만큼, 입맛도 달라졌고 한결같이 70여 년의 세월 동안 평양냉면으로 손님을 맞이했던 장소는 자주 가고 싶은 곳이 됐다. 아버지와 함께 와야만 갈 수 있을 거리였던 사농동은 멀게만 느껴졌는데, 이제 아버지에게 운전을 잘 배워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올 수 있게 됐다.
이처럼 평양냉면을 아무리 다른 사람이 치켜세워도, 본인 입맛이 아니라면 억지로 가까이할 필요는 없다. 문득 겨울의 흔적을 벗고 훌쩍 날이 더워졌을 때, 양념이 세지 않고 시원한 그 국물이 생각나는 순간이 오기도 한다. 어쩌다 새콤한 동치미 국물 대신 다른 국물이 먹고 싶어질 수도 있다. 식초, 설탕, 양념장 등을 왜 넣어 먹느냐고 다른 사람을 꾸짖을 필요도 없다. 사람마다 입맛이 천지 차이인데 그 모든 것을 포용했기 때문에 정약용이 먹던 조선 시대부터 지금까지 오랜 사랑을 받으며 살아남은 것이 아닐까.
평양냉면의 낮은 천장 아래 앉아 은빛 사발을 마주하고 있는 손님들을 보면 알 수 있다. 나이 지긋한 할아버지, 할머니의 조용한 젓가락질, 왁자지껄 활기찬 청년들의 수다. 행동의 크기는 모두 다르지만 냉면 하나를 앞에 두고 음미하고 있다. 뽀얗고 시원한 육수 속에서 진득한 깊이를 느껴본다. 쫄깃한 면발과 국물은 잘 어울려서 소고기 한 점과 한번, 동치미 무와 한번, 길게 썬 배와 한번씩 후루룩 하다 보면 금세 사라진다.
함께 시킨 고소한 빈대떡은 허전할 수도 있는 냉면의 자리를 든든하게 메꿔준다. 금방 부쳐내 뜨거운 빈대떡에 간장을 콕콕 찍어 먹는 맛도 놓치기 아쉽다.
한 자리에 오랫동안 자리하는 음식점일수록 손님의 추억도 쌓이기 마련이다. 3대가 운영하는 이곳이 계속 운영해 나중에는 내 아이의 손주를 데리고 올 수 있도록 이어졌으면 하고 바라본다.

이계림 기자 cckcr7@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