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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나무

음식나무 : 시골쥐의 서울음식

닭을 푸짐하게 먹는 법 닭한마리

닭을 푸짐하게 먹는 법 닭한마리

by 운영자 2017.12.15

‘닭한마리’라는 생소한 메뉴의 음식이 있다는 것은 서울에 와서야 처음 알았다. 한 마리, 두 마리 세는 수량의 의미에서 벗어나 한 마리 통째로 잘 먹는다는 뜻으로 생긴 이름이었다. 이름만 들어서는 닭볶음탕이나 삼계탕, 닭갈비처럼 바로 조리법이 떠오르는 음식이 아니기 때문에 처음 마주쳤을 때 ‘닭볶음탕이랑 무슨 차이가 있는 거지?’하고 고개를 갸웃했다.
뜨거운 육수와 칼국수, 내 맛대로 만드는 양념, 그리고 시끌벅적한 사람들의 사는 이야기가 곁들어져야 비로소 ‘닭한마리’라는 메뉴는 완성된다. 좁디좁은 골목에 우뚝 선 건물은 그동안 이곳에서 사람들이 먹은 닭이 어마어마하리라는 것쯤 쉽게 파악할 수 있다. 길 자체도 재밌기 때문에 시장 구경 실컷 하고, 구운 생선이 잔뜩 놓인 생선구이 가게 골목의 유혹을 뿌리쳐야 비로소 도착할 수 있다.
인파에 밀려 한참을 기다리기도 해야 하는 이곳에서 험하게 쓰이는 용기들은 시끌벅적 마음 편하게 식사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든다. 거대한 양푼부터 칼국수를 담고 오는 파란 플라스틱 바가지는 어릴 적 살던 집 마당이 떠오르게 한다.
가위로 숭덩숭덩 잘라낸 닭고기가 육수에서 잘 익으면 자신만의 특제 소스에 듬뿍 찍어 먹으면 된다. 거친 고춧가루가 들어간 양념과 식초, 겨자, 간장이 어우러진다. 맑은 국물이 물린다면 시원하게 담근 김치를 한가득 가져와 취향껏 넣어 끓여 먹어도 된다. 치킨 한 마리의 양과는 비교할 수가 없다. 떡사리, 파사리, 감자사리, 국수사리 등으로 과식할 만큼 양을 채우게 된다.
한약재의 역할이 큰 삼계탕도 아니고, 매콤하고 국물이 자잘한 닭볶음탕도 아니다. 닭한마리가 위치한 영역은 식사보다도 마음속 이야기가 다 풀릴 때까지 자리 잡고 앉아 고기도 뜯고 국물에다가 술 한 잔 기울이기 좋은 안주 거리이다. 옆 테이블에 자리 잡은 중년층도 뒷자리의 대학생들도 서로 대결하듯 목소리가 계속 커진다. 따끈한 국물이 팔팔 끓으며 내는 온기가 마음의 추위도 녹이고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낸다. 사업, 자식, 친구 자랑부터 시작해 그동안 못 봤던 사람들과 만나 작년과 다름없이 서로 잘살고 있음을 확인한다. 한울타리 안에서 한 마리 닭을 놓고 벌이는 정겨운 식사이다.

이계림 기자 cckcr7@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