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이미지

음식나무

음식나무 : 시골쥐의 서울음식

함박눈 까르보나라에는 노른자가 있지

함박눈 까르보나라에는 노른자가 있지

by 운영자 2017.12.08

어릴 적 까르보나라가 크림 파스타와 다르다는 것을 알았을 땐 다소 충격을 받았다. 까르보나라가 좋다고 그것만 먹었던 때가 있었는데, 달걀노른자와 치즈 가루 정도만 들어간다니…. 재료만 들어서는 맛볼 엄두도 나지 않았지만, 좀처럼 정통 까르보나라 파스타를 만나기도 쉽지 않았다. 맛이 궁금해 한번쯤은 시도해보고 싶었는데, 그저 마음뿐이었다. 인터넷으로 동영상을 통해 ‘까르보나라 만드는 법’을 볼 정도로 관심은 많았어도 직접 집에서 시도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무수히 먹었던 크림 파스타에 질리고, 오일 파스타에 기웃거리고 있을 때 파스타를 잘하는 집을 소개받았다.
망원동에 있는 이곳은 테이블이 세 개 남짓 놓인 작은 공간이지만, 즐겨 찾는 사람들로 늘 채워진다. 문을 닫기 전에도 재료가 다 떨어지는 경우도 있을 정도이다. 아담한 자리에는 정성 들여 가게를 꾸민 흔적이 보인다. 일본식 그릇 하나도 아기자기하다.
방문해보니 사장이자 쉐프의 묵묵한 모습에 더욱 믿음이 간다. 혼자 분주히 움직여 모든 요리를 척척 내놓는다. 닭가슴살 오렌지 샐러드, 바질페스토·리코타치즈·토마토파스타, 이탈리안 까르보나라를 주문했다.
먼저 나온 닭가슴살 오렌지 샐러드는 상큼하고 풍성했다. 로즈마리와 화이트와인에 하루 재워둔 닭가슴살은 오렌지와 찰떡 조합을 이뤘다.

바질페스토와 리코타치즈는 따로 나왔다. 토마토 파스타 위에 예쁘게 올려놓으니 색감이 화려하다. 역시 새로운 맛이었다. 샐러드랑 자주 먹던 리코타 치즈가 바질페스토, 생 토마토와 어우러지니 먹음직스러운 겉보기만큼 신선했다. 함박눈이 내린듯한 까르보나라는 약간의 흥분을 가져왔다. 그 안에는 달걀노른자가 있어 살살 비벼 먹어야 했다. 크림이 없으니 오일 파스타를 먹는 느낌이었다. 베이컨과 달걀노른자, 파마산 치즈 셋의 조합이 적절했다. 많은 재료가 들어가지 않기 때문에, 재료 하나하나의 선택이 중요하고 무엇보다 익힘이 적당한 파스타 면이 바탕이 되어야 했다. 달걀도 따뜻한 면에 비볐다고 해서 익혀지지 않고 면에 코팅이 되듯 묻혀 맛을 냈다. 생애 첫 이탈리안 까르보나라를 먹어본 경험은 남달랐다. 오히려 오일 파스타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에서는 버섯 크림 파스타를 따로 팔고 있어 확실히 완전히 다른 메뉴라는 것이 와 닿았다. 늘 먹던 것만 고집하지 말고, 다음에는 또 다른 파스타에 도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로운 문을 열고 파스타의 세계에 풍덩 빠진 느낌이다.
이계림 기자 cckcr7@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