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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나무

음식나무 : 시골쥐의 서울음식

유령역의 음습함을 달래는 라면

유령역의 음습함을 달래는 라면

by 운영자 2017.12.04

서울에는 유령역이 하나 있다. 신설동 유령역은 지도에서 표시되지 않는 역이다. 1974년 지하철 1호선 건설 당시 노선 조정으로 인해 폐쇄됐으며 기능을 상실했지만, 촬영장소로 쓰이면서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다. 엑소, 트와이스의 뮤직비디오나 드라마 ‘아이리스’, 영화 ‘감시자들’에서 이곳을 배경으로 삼았다. 촬영 장소로 가끔 문 열어주는 이곳을 시민들에게 주말마다 잠깐 공개하기로 했다.
방문자 출입증을 목에 걸고 어두컴컴한 신설동 유령역을 방문했다. 출입문은 신설동역 한곳에 숨어 있었다. 철문이 열리자 음산한 분위기의 계단이 눈에 확 들어왔다. 사진 전시와 함께 장소를 공개하고 있는데 역에서 들을 수 있는 소리와 빔프로젝터를 활용해 작은 공간을 뜻있게 꾸몄다. 함께 한 참석자들은 잠들어있던 공간의 오랜 흔적을 찾아 이리저리 헤매며 카메라 셔터를 누르기 바빴다. 먼지가 쌓인 신설동역 현판은 서러워 보이기도 했다. 이곳이 만들어졌을 때만 해도 수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닿을 것이라고 예상했을 테다. 시간의 흐름을 정지시킨 듯 울퉁불퉁한 마감과 콘크리트 구조물이 보였다. 옛 서울과 지금의 모습을 마주하는 영상은 마치 신설동 유령역에게 ‘세상 구경’을 시켜주는 듯했다. 스크린도어도 없고, 빛도 없는 이곳에 잠시 들어왔다 나왔을 뿐인데 ‘따끈한 것’이 무척 당겼다.
신설동역 옆에는 서울풍물시장이 있다. 이곳을 향하던 중 한 끼 해결하고자 쟁반에 라면과 김밥을 들고 분주히 발걸음을 옮기는 상인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따뜻한 김이 모락모락 나는 라면! 주변을 둘러보니 작은 분식집에 보였다. 입구에서부터 높은 화력으로 쫄깃하게 면발을 살리며 끓이는 라면이 시선을 잡는다. 라면 한 그릇, 꼬마김밥, 어묵을 주문했다. 단골로 보이는 손님들이 계속 들어와 자신의 집을 온 듯 편하게 자리를 잡고 커피를 타며 수다를 떤다.
금세 나온 라면은 대파를 살짝 뿌리고 달걀을 풀어서 얼큰하게 얼어있던 속을 녹여줬다. 같은 브랜드의 라면을 써도 집에서 끓여 먹는 라면과 참 다른 맛이다. 양은냄비에서 꼬들꼬들하게 익은 면은 금세 사라졌다. 많은 재료를 넣지 않은 김밥도 라면과 먹기 편했다. 높은 가격을 붙이지 않고 허기를 채워주는 음식들, 서민의 발이 되어주는 지하철과 잘 어울리는 한 끼였다.

이계림 기자 cckcr7@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