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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나무

음식나무 : 시골쥐의 서울음식

시간이 고인 곳에서 해물 한 점

시간이 고인 곳에서 해물 한 점

by 운영자 2017.11.24

이태원의 좁은 비탈길을 내려가다 보면 사람들이 붐비는 실내포장마차 가게가 하나 있다. 해물을 주로 판매해서인지 가게 주변에는 수많은 소라껍데기가 쌓여있다. 아주 오래된 공간으로 보이는 이곳에서는 곳곳에서 ‘옛날감성’을 담는다. 오랫동안 손때가 묻었을 인테리어는 잠시 대학생활을 떠올리게 한다.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즐겁게 놀았던 때를 말이다. 아늑한 분위기에 사람들은 자신의 오래된 기억을 꺼내놓는다. 사람들이 워낙 많이 찾는 곳이라 잠시 발을 동동거리며 밖에서 대기했다. 겨울이라도 이태원의 밤은 붐비는 인파 속에서 느껴지는 특유의 뜨거움이 있다. 옆을 스치는 젊은이들의 발걸음에는 설렘이 묻어나온다.

따뜻한 콩나물국으로 밖에서 몰고 온 추위를 달래고 나면, 싱싱한 해물을 한 접시 가득 담은 해물모듬을 택한다. 초장이 예쁘게 담긴 가리비나 돌멍게의 붉은빛이 먹음직스럽다. 멍게와 조개를 하나씩 아기자기하게 까먹는 즐거움이 있다.
그동안 하지 못했던 마음속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틀림없어 보이는 사람들의 얼굴은 신나면서도 흥분되어있다. 시끌벅적해 귀가 먹먹할 정도이다. 이곳은 1999년에 시작됐다고 한다. 세기말에 시작된 이곳은 마치 방문자들에게 그들만의 앨범을 열어볼 수 있도록 만든 자리처럼 느껴진다. 이상하게도 어떤 공간에 가면 옛이야기를 술술 풀어내게 되는 곳이 있듯이. 기자는 1년 전 이곳을 처음 방문했던 때를 떠올렸다. 그때와 지금 하나도 달라진 것이 없는 듯 하지만 시간은 화살을 쏜 듯 흘러버렸다.
올해는 같은 계절을 다시 맞이하는 시간이 유난히 짧았던 것 같다. 내년의 캘린더와 다이어리를 준비하고 한 해를 서서히 마무리 짓는 시도를 하는 겨울이 벌써 오다니! 노란 조명 아래에서 작년과 내년을 번갈아 가며 잠시 쉼표를 찍어본다. 곧 분주하게 다가올 망년회와 송년회를 미리 만끽해보는 것이다. 가볍게 기울이는 술잔과 해물의 바다내음 속에서 내년에 떠오를 해를 맞이할 용기를 내본다.

이계림 기자 cckcr7@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