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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나무

음식나무

도깨비에게 홀리듯, 저녁이 어울리는 음식

도깨비에게 홀리듯, 저녁이 어울리는 음식

by 운영자 2017.10.23

해가 짧아졌다. 어두운 시간이 길어지는 계절이 오면, 날이 차니 멀지 않고 간단하게 짐을 챙겨 걸어 다니고 싶어진다. 멀리 가기도 싫고 동네 주변을 돌아다니다가 눈에 들어온 곳, 주택을 개조한 일본식 선술집이었다. 입구에 음식 메뉴가 문패처럼 걸려 있는 모습을 보니 왜인지, 사람이 아닌 음식이 “이리 들어오면 어떨까”하고 유혹하는 것 같았다.

음식의 손짓에 용기있게 찾은 이곳은 검정색으로 단장했다. 종업원의 의상부터 바닥, 벽 모두 어두웠다. 가게 내부가 다른 것보다도 음식에 집중하라고 말하는 듯했다.
생각보다 메뉴가 매우 다양했다. 흔하게 접할 수 없는 이름도 보였고 아예 모르는 메뉴도 있었는데, 배고프다보니 과감하게 도전할 마음이 들지 않았다.

가벼운 맥주 한잔에 어울리는 오꼬노미야끼, 돈코츠라멘을 골랐다. 찬바람이 불면 따뜻한 국물이 그리워지기 시작한다. 붕어빵 파는 곳에서 손을 호호 불며 먹는 어묵 국물이 그렇게 맛있듯이 계절이 감미료가 된다.

돈코츠라멘의 기름진 국물은 언제 먹어도 맛있다. 국물 깊숙이 옮겨 넣어 아삭한 숙주의 숨을 죽이고 면을 흡입한다. 소유라멘, 미소라멘, 탄탄카라미소라멘 등 다양한 종류가 있어도 언제나 후회 없이 안전한 선택을 위해 진한 돈코츠라멘으로 향한다.

오꼬노미야끼의 가쓰오부시가 접시 위에서 춤을 추면 기분마저 간질간질해진다. 먹을 때마다 소스맛으로 먹는 음식인 것 같지만, 아삭한 양배추를 평소와 달리 이렇게 즐겁게 먹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훌륭한 변화이다. 양배추를 떠올린 후 맛을 생각하기란 쉽지 않으니 말이다.
입구의 벽면 한곳에 쌓인 사케가 눈에 띄었지만, 이는 나중으로 미뤘다. 다음에 또 다른 메뉴에 도전하며 함께 하기로 한다. 겨울이 가까워지면 또 생각날 듯했다.

메뉴가 많아서 다음에 와서 먹을 것이 생기면 그 음식점의 입장권이 생기는 기분이다. 아쉬움으로 기억했다가 다시 문을 열어보는 것이다.

이계림 기자 cckcr7@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