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이미지

음식나무

음식나무 : 시골쥐의 서울음식

발길 닿는 대로, 그 끝엔 함흥냉면

발길 닿는 대로, 그 끝엔 함흥냉면

by 운영자 2017.09.29

버스를 타고 내려 발길 닿는 대로 걷던 어느 주말, 서울 중앙시장이 보였다. 동대문, 남대문 시장과 함께 서울 3대 전통시장이라고 하는데 비해, 규모가 매우 크지는 않다. 신당역이 가깝지만 이곳의 주소지는 황학동이고, 지하에는 쇼핑센터와 함께 ‘신당창작아케이드’가 있는 곳이다. 시장 구경보다 재밌던 것은 바로 창작공간이었다. 공예예술가를 모집해서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았던 한적한 공간에 색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지하에 있는 횟집에서 삼삼오오 사람들이 밥을 먹고 있는 공간을 지나 조금씩 올라가면, 기둥마다 다양한 그림이 그려져 있다. 공예를 하는 사람들이 모인 만큼, 유리벽 속의 공간 안에 담긴 작품을 보는 즐거움이 있다.
지하 길을 따라 실, 금속, 섬유 등 다양한 재료로 만드는 온갖 형태를 감상하다보면 잠깐이어도 갑자기 마주친 것들 앞에서 깊은 생각에 잠기게 된다.
서울은 촘촘하게 사람들의 손길, 발길이 닿아있다. 시장 앞에 ‘영미상가’라는 간판이 작은 골목 위에 있어 호기심을 갖고 들어서자 시간이 멈춘듯한 풍경이 펼쳐진다. 한산한 길 사이에 발길을 멈추게 하는 음식점이 있었다. 함흥냉면 메뉴가 크게 프린트된 입구는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다.
저녁이라면 고기를 시켰겠지만, 아직 날이 밝아서 함흥냉면 한 그릇을 주문했다. 바로 나오는 따뜻한 육수가 기다림을 달래준다. 겨울에 먹어야 제 맛인 냉면이라지만, 아직 그 정도의 냉면 애정은 부족해서일까 이런 가을이 되면 서서히 다음 해를 기약하게 되는 메뉴이다.

출출하지 않아도 ‘면’이기 때문에 간식처럼 먹어본다. 푸짐한 양의 면발 사이로 시뻘건 양념장은 매콤달콤하다. 특별하게 찾아가서 혹은 줄을 서서 먹는 음식은 당연히 그 맛에 대한 기대를 많이 하게 된다. 하지만 별다른 기대 없이 잠시 쉬듯이 먹는 음식들은 그것 나름대로 즐거움이 있다. 배와 무김치는 적절하게 냉면의 맛을 더하고, 잘게 썰어 뿌려진 고기가 씹을 때마다 나타나 고소했다. 쉼표처럼 나타난 음식, 잠깐 멈춰 맛과 공간을 즐겼다면 기운을 차려 또 다시 무작정 걸어본다. 우연이 더 즐거울 때도 있다.

이계림 기자 cckcr7@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