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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나무

음식나무 : 시골쥐의 서울음식

차가운 밤의 심심한 멸치국수

차가운 밤의 심심한 멸치국수

by 운영자 2017.08.18

언제 여름이었냐는 듯이 날이 급격하게 차가워졌다. 완연한 가을 하늘을 보여주더니 비까지 추적추적 내렸다. 차량의 연료가 떨어져 청량리역 인근에서 잠시 멈춰 섰다. 어둡고 캄캄한 옆 골목에서 ‘멸치국수’라는 불빛이 한눈에 들어왔다. 따뜻한 국물의 멸치국수, 늦은 시각 기차를 타고 오느라 허기진 속을 달래기에 딱 이었다.

멸치국수집은 어느 분식집처럼 작은 공간이었다. 많은 사람이 오고갔던 흔적에 바랜 물건들. 시간을 따라 차곡차곡 달라졌을 메뉴판의 가격들. 콩국수, 칼국수, 비빔국수, 열무국수 등 다양한 국수류와 따로국밥, 만둣국, 수제비 등이 보였다. 모두 선택하는 데 부담스럽지 않고 평소 편하게 즐겨 먹는 음식들이다.
재미있는 점은 물만 셀프가 아니라 모두 셀프라는 것이다. 친절한 인상의 아주머니는 배식구에 국수와 김치, 양념장이 놓인 쟁반을 내놓는다. 자신의 자리에 갖고 와 한 접시 떠 본다. 멸치국수는 화려하지 않다. 형형색색의 고명은 없지만, 멸치국물과 김 가루로도 맛은 충분하다. 희멀건한 국수가락은 부담스럽지 않게 목구멍을 타고 내려간다. 알싸하게 매운 청양고추를 송송 썰어 넣은 간장을 조금 쳐서 먹으면 심심했던 국수는 든든하게 속을 채운다. 이내 간장은 옆 테이블로 옮겨졌다. 작은 공간에서는 간장통도 많이 필요 없다. 테이블과 테이블을 오가며 각자의 취향대로 국수의 간을 맞추곤 퇴장한다.
한 명의 손님이 나가고 이어 다른 손님이 들어왔다. “국수 몇 가닥 더 넣어 달라”는 주문이 재밌다. 푸짐하게 말아달라는 말이다. 이 시간 푸짐하게 배를 채우려는 손님에게는 다시 먼 행선지가 남아있을 것이라는 추측뿐이다. 축축한 밤에 어울리는 멸치국수 한 그릇, 식사 혹은 간식 그 사이의 어느 지점에서 오고가는 사람들의 속에 채우고 있었다. 비가 늦은 여름밤을 토닥이며 잠재우듯이, 멸치국수도 배고픔에 요동치던 뱃속을 재웠다. 그렇게 한 계절이 갔다.

이계림 기자 cckcr7@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