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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나무

음식나무 : 달콤한 디저트 여행

‘평등’ 구워낸 프랑스 지팡이

‘평등’ 구워낸 프랑스 지팡이

by 운영자 2016.04.15

바게트(baguette)

갈색 종이봉투 속 지팡이처럼 생긴 빵. 파리지앵에 대한 환상을 떠올리게 하는 바게트는 사실 먹을 권리의 상징물이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쫀득한 식감으로 사랑받고 있으며, 한입 물면 고소한 풍미로 가득한 바게트는 200년간 기다란 모양을 유지해왔다.

임수희 기자 leemsuhee@gmail.com
길이 80cm, 무게 300g의 빵

바게트의 모양은 어떤 빵집을 가던 똑같다. 80cm의 길이와 300g의 무게다. 불과 약 200년밖에 되지 않은 바게트가 지팡이 형태를 유지하게 된 이유는 프랑스의 역사 속에서 찾을 수 있다.

현재 바게트에는 입자가 고운 밀가루에 맥주의 효모가 들어가 고소하고 부드러운 식감이 느껴진다. 초기의 바게트는 여느 빵이나 그랬듯이 비싼 밀가루를 편히 쓸 수 있는 상류층만 맛볼 수 있었다. 제빵사들은 귀족을 위한 빵에는 부드럽고 흰 밀가루를 사용했고, 일반 서민이나 농민에게는 도토리 등을 넣어도 티가 나지 않았기에 각종 재료를 넣은 검은 빵을 팔았다. 당시 농부들이 밀가루가 들어간 빵을 먹는 것은 신의 뜻에 어긋나고, 사회적 윤리와 기강을 해치는 범죄라고 여겨지기도 했다. 오랜 흉년으로 인해 곡물의 가격이 올라가면서 식생활에서도 빈부의 격차가 심해졌고, 이에 평등을 찾고자 하는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게 된다.

서민들은 평등한 사회를 위해 치열하게 투쟁했다. 프랑스 혁명이 일어난 4년 후 의회는 빵의 평등권을 선포한다. 부자와 빈자 사이에 빵을 먹을 권리로 차별을 두어서는 안 되며, 모두를 위해 질 좋은 빵을 생산해야 한다는 것이 빵의 평등권이다. 정부는 바게트를 생산할 때 ‘길이는 80cm, 무게는 300g으로 만들라’는 법률을 제정했다. 또한 밀가루, 소금, 물, 이스트를 기본 재료로 제한을 두며, 이에 다른 재료를 추가해서 만든 빵은 바게트라는 이름을 붙이고 판매할 수 없게 됐다.

겉과 속이 다른 매력

가장 맛있는 바게트는 일단 겉이 바삭해야 한다. 너무 딱딱하지 않아야 하며 손으로 자를 수 있을 정도여야 한다. 바게트 속의 단면은 크림 색깔이어야 하고, 눌렀을 때 탄력이 어느 정도 있어야 한다. 우유처럼 담백하고, 아몬드처럼 고소한 맛이 느껴질수록 좋다.

바게트를 만들 때는 굽기 전 반죽에 칼금을 넣고 물을 뿌려 굽는다. 칼금은 반죽이 부풀며 불규칙하게 터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고, 물을 뿌리는 것은 수분이 증발하며 겉이 바삭해지도록 하기 위해서다. 아침에 갓 구운 바게트에 신선한 버터나 치즈와 함께 먹는 그 맛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