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과 영양까지 일품 임금님이 즐겨 먹던 보양식
맛과 영양까지 일품 임금님이 즐겨 먹던 보양식
by 운영자 2015.06.12
>> 알고 먹으면 건강UP
궁중음식이 한식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것은 각 고을에서 들어오는 진상품을 가지고 조리기술이 뛰어난 주방 상궁과 대령숙수들의 손에 의해 최고로 발달되고 가장 잘 다듬어지고 전승되어 왔기 때문이다. 특히 임금님의 수라상은 최고의 식재료만을 사용했다. 그중 임금의 기력을 보충해주기 위해 사용됐던 몇몇 보양식은 이후 비법이 민간으로 전해지면서 별미 음식이 됐다. 별미로 즐기는 임금님의 보양식 세 가지를 소개한다.
뼈와 관절에도 보약, 곰탕
궁중음식이 한식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것은 각 고을에서 들어오는 진상품을 가지고 조리기술이 뛰어난 주방 상궁과 대령숙수들의 손에 의해 최고로 발달되고 가장 잘 다듬어지고 전승되어 왔기 때문이다. 특히 임금님의 수라상은 최고의 식재료만을 사용했다. 그중 임금의 기력을 보충해주기 위해 사용됐던 몇몇 보양식은 이후 비법이 민간으로 전해지면서 별미 음식이 됐다. 별미로 즐기는 임금님의 보양식 세 가지를 소개한다.
뼈와 관절에도 보약, 곰탕
곰탕은 사골, 우족, 양지, 소꼬리, 양 등 소 한 마리의 영양가 높은 부위만을 넣고 진하게 고아 낸 국으로 예로부터 임금님의 수라상에 오르던 귀한 음식이다.
아미노산과 단백질이 풍부한 쇠고기, 칼슘과 무기질 등이 풍부한 소 꼬리와 뼈를 오랜 시간 고아 만들어 생체구성에 중요한 영양소가 그대로 녹아있는 영양만점 보양식이다.
요즘도 곰탕은 남녀노소 가릴 것 없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보양식으로 통한다. 뜨끈뜨끈한 곰탕에 대파를 송송 썰어 넣고, 깍두기나 김치를 곁들이면, 진수성찬 저리 가라 할 정도로 담백하면서도 구수한 맛이 입안을 감돈다.
곰탕의 유래를 따지면 1527년 조선 중종(22년) 때 발간된 훈몽자회에 국보다 국물이 진한 데다 공이 많이 들어가는 진귀한 음식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내의원에서 준비한 ‘타락죽’
아미노산과 단백질이 풍부한 쇠고기, 칼슘과 무기질 등이 풍부한 소 꼬리와 뼈를 오랜 시간 고아 만들어 생체구성에 중요한 영양소가 그대로 녹아있는 영양만점 보양식이다.
요즘도 곰탕은 남녀노소 가릴 것 없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보양식으로 통한다. 뜨끈뜨끈한 곰탕에 대파를 송송 썰어 넣고, 깍두기나 김치를 곁들이면, 진수성찬 저리 가라 할 정도로 담백하면서도 구수한 맛이 입안을 감돈다.
곰탕의 유래를 따지면 1527년 조선 중종(22년) 때 발간된 훈몽자회에 국보다 국물이 진한 데다 공이 많이 들어가는 진귀한 음식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내의원에서 준비한 ‘타락죽’
타락(駝酪)이란 우유를 가리키는 옛말이며 쌀을 갈아서 물 대신 우유를 반 분량 넣어 끓인 무리죽이다.
타락죽은 어린이 이유식이나 환자식으로 적당하며 궁중에서는 약처럼 사용했다. 임금이 병이 나거나 몸이 약할 때 내의원에서 보양식으로 올렸다. 조선왕조 때는 동대문 쪽의 낙산(酪山)에 목장이 있어 궁중에 진상했다.
우리나라에서 우유를 언제부터 식품으로 썼는지 그 상한시기는 알 수 없으나, 문헌으로 미루어 고려 시대부터 유우소가 있었고 낙수를 가공해 상류층 일부에서 식용으로 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규합총서’에서는 타락죽을 쑬 때 우유와 무리의 비를 부피로 1:0.8 정도로 했다. 재료의 비는 다소 임의로 가감할 수 있다. 단, 우유보다 무리(물에 불린 쌀을 물과 함께 맷돌에 간 후 체에 밭쳐 가라앉힌 앙금)가 많은 것은 좋지 않다.
죽을 쑬 때에는 먼저 무리로 되직하게 죽을 쑤다가 거의 익었을 때, 우유를 함께 넣고 뭉근한 불에서 고르게 섞으면서 반투명의 상태가 되도록 끓인다. ‘증보산림경제’에 실려 있는 조리법은 우선 우유 한 되에 물 두 홉가량을 섞어 뭉근한 불에서 서너 번 끓어오르게 한 다음, 떠오르는 것을 거두어낸다.
타락죽은 심폐를 보하고, 갈증과 기침을 멈추며 머리털을 윤기나게 한다고 전해지고 있다.
일품 보양식 민어
타락죽은 어린이 이유식이나 환자식으로 적당하며 궁중에서는 약처럼 사용했다. 임금이 병이 나거나 몸이 약할 때 내의원에서 보양식으로 올렸다. 조선왕조 때는 동대문 쪽의 낙산(酪山)에 목장이 있어 궁중에 진상했다.
우리나라에서 우유를 언제부터 식품으로 썼는지 그 상한시기는 알 수 없으나, 문헌으로 미루어 고려 시대부터 유우소가 있었고 낙수를 가공해 상류층 일부에서 식용으로 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규합총서’에서는 타락죽을 쑬 때 우유와 무리의 비를 부피로 1:0.8 정도로 했다. 재료의 비는 다소 임의로 가감할 수 있다. 단, 우유보다 무리(물에 불린 쌀을 물과 함께 맷돌에 간 후 체에 밭쳐 가라앉힌 앙금)가 많은 것은 좋지 않다.
죽을 쑬 때에는 먼저 무리로 되직하게 죽을 쑤다가 거의 익었을 때, 우유를 함께 넣고 뭉근한 불에서 고르게 섞으면서 반투명의 상태가 되도록 끓인다. ‘증보산림경제’에 실려 있는 조리법은 우선 우유 한 되에 물 두 홉가량을 섞어 뭉근한 불에서 서너 번 끓어오르게 한 다음, 떠오르는 것을 거두어낸다.
타락죽은 심폐를 보하고, 갈증과 기침을 멈추며 머리털을 윤기나게 한다고 전해지고 있다.
일품 보양식 민어
담백하고 비린내가 적은 여름이 제철인 민어는 맛이 달고 성질이 따뜻해 여름철 더위에 지친 몸에 기운을 돋우는 역할을 한다.
민어도 임금님께 진상되던 여름철 대표 보양식 중 하나였다. 조선 시대에는 ‘민어탕이 일품(一品), 도미탕이 이품(二品), 보신탕이 삼품(三品)’이란 말도 있었듯이 귀한 대접을 받았다.
싱싱한 민어는 버릴 것이 비늘밖에 없다고 할 정도로 모든 부위에 영양소를 고루 갖추고 있어 주로 회로 즐겨 먹고 난 후 발라낸 뼈로 민어매운탕을 끓여 먹기 시작했다.
김경주 기자 pool1004.blog.me
참고 농촌진흥청
민어도 임금님께 진상되던 여름철 대표 보양식 중 하나였다. 조선 시대에는 ‘민어탕이 일품(一品), 도미탕이 이품(二品), 보신탕이 삼품(三品)’이란 말도 있었듯이 귀한 대접을 받았다.
싱싱한 민어는 버릴 것이 비늘밖에 없다고 할 정도로 모든 부위에 영양소를 고루 갖추고 있어 주로 회로 즐겨 먹고 난 후 발라낸 뼈로 민어매운탕을 끓여 먹기 시작했다.
김경주 기자 pool1004.blog.me
참고 농촌진흥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