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거와 죄책감 사이
버거와 죄책감 사이
by 운영자 2018.01.05
2013년 음식 칼럼니스트 황교익 씨가 블로그에서 햄버거와 비빔밥은 같은 카테고리에 들어간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때도 꽤 흥미롭게 읽었었는데, 얼마 전 어느 예능 프로그램에서 한번 더 햄버거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냈다.
사실 따지고 보면 햄버거 자체는 패스트푸드이지만 정크 푸드는 아니다. 함께 마시는 콜라나 감자튀김이 좀 더 건강에 좋지 않다. 후다닥 만들고 빠르게 섭취할 수는 있어도 건강에 나쁘다고 무조건 단정할 수는 없다. 빵 두 쪽과 양상추, 토마토 그리고 고기 패티의 질에 신경을 쓴다면 다양한 영양소를 고루 섭취하는 일이 크게 나쁠 리가 없다. 이렇게 기자 스스로를 합리화시키며 들어간 곳이 바로 샤로수길의 유명 수제버거 집이었다. 샤로수길은 서울대입구역과 낙성대역 사이에서 새로운 골목 상권으로 젊은이들을 부르고 있다. 이제 가로수길은 진부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망리단길과 함께 새로운 상권으로 부상했다. 길마다 돋보이는 간판이 보이고, 가게 앞 길게 늘어선 줄을 발견할 수 있다.
이곳이 9온스라는 이름을 내세우는 만큼, 9온스 버거는 240g의 두둑한 고개패티가 잔뜩 들어가고, 오래 볶아 카라멜라이즈드된 양파, 치즈가 빵위에 듬뿍 올려 진다. 한 번에 넣을 수 없으니 접시 한쪽에 생양파와 토마토, 채소를 얹었다. 스믈스믈 죄책감이 올라온다. 칼로리를 생각하면 마음 한쪽이 불편해진다. 체중을 생각하는 순간 좀 전의 다부진 자기합리화는 금이 간다. 하지만 적당히 익혀 부드러운 고기와 빵, 짓이겨진 양파들이 내는 맛의 조합이 언제 그랬냐는 듯 걱정을 한구석으로 몰아냈다.
옆에 놓인 머스타드 소스를 뿌려서, 상큼한 피클과 양파를 얹어서 먹고 맥주 한잔을 곁들이니 세상 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 된다.
부드러운 아보카도를 재료로 올린 캘리포니아 버거도 신선함이 살아있다. 다양한 색깔이 어우러져 사진 찍는 즐거움도 톡톡히 주는 메뉴이다. 몸무게에 대한 근심을 살포시 내려놓고, 버거를 든다. 생각해보면 패스트푸드라고 빨리 먹을 필요는 없다. 천천히 먹어도 괜찮다. 음식에 덕지덕지 붙은 관념은 맛을 볼 때도 방해가 된다. 잠시 방해꾼은 외면해본다. 한 해의 마지막 날, 마지막 끼니라는 명목이 가져온 용기였다.
이계림 기자 cckcr7@hanmail.net
이계림 기자 cckcr7@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