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바랜 시간은 커피잔에 고이고
빛바랜 시간은 커피잔에 고이고
by 운영자 2017.12.29
1972년, 처음 미스코리아 실황중계를 TV로 시작하고, 서울특별시 인구가 600만을 돌파한 해이다. 까마득한 옛날로 느껴지는 이때 생긴 카페가 있다. 명동에 있는 ‘가무’라는 이름의 카페는 ‘까뮈’라는 이름으로 시작했지만, 외래어 상호를 시정해야했기에 한 획씩 떼 지금의 이름을 가졌다고 했다. 메뉴판에서 가장 위에 ‘비엔나커피’를 적어둔 곳. 크림을 올린 커피는 ‘카페모카’라는 이름이 더 익숙한 젊은이들은 당황할 수밖에 없다. 어떤 맛인지도 예측 불가하지만, 우리 어머니 아버지 세대에서 즐겨 드셨다고 하니 바로 시도해본다. 옛날의 모습을 잘 재현하기로 유명했던 어느 드라마에서도 이곳이 배경이 됐다고 했다. 한때 대한민국에서 가장 비싸게 커피를 팔 정도로 이곳의 선호도는 높았다고 한다.
기존에 즐기는 카페모카가 달달한 초코시럽을 뿌렸다면, 비엔나커피는 크림을 올린 것은 비슷할지 몰라도 크림 아래 쌉사름한 커피가 자리하고 있다. 크림도 다르다. 휘핑크림과는 다른 쫀득하고 밀도 높은 크림을 가득 올렸다. 티스푼으로 조금씩 저어가며 크림도 맛보고, 커피도 맛보며 수다와 함께 오랜 시간을 보내기 딱 좋았다.
카페 안은 앤틱 소품으로 가득하다. 고풍스러운 느낌의 갈색 소파와 은은한 조명은 머무를 때 편안함을 준다. 흰색 혹은 노란빛 조명이 아니라 붉은색 조명이 함께 들어온다는 점이 특이해 눈길을 끌었다. 화려한 샹들리에를 보아하니 멋 좀 부린다 싶은 사람들의 발걸음을 이끌었을 것이다. 방문한 이들도 역시 그때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을법한 지금의 중장년층이 다수였다.
창문 사이로 보이는 중국대사관의 풍경은 새롭게 건물을 건축해 많이 달라졌음에도 한적함이 있다. 잎사귀가 푸른 여름에는 또 다른 모습으로 휴식을 전한다고 한다. 장소도 나이를 먹는 것일까, 카페로 태어났을 때만 해도 무수히 많은 다방 속에서 제일 잘 나가던 이곳은 이제 방문객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조용함이 느껴진다. 물리적인 소음의 정도가 아니라 분위기에서 전해지는 여유로움이다. 셀 수 없는 프랜차이즈 카페가 있는 명동, 붐비는 도심 한복판에서 고목처럼 빙그레 미소 짓고 있는 느낌을 받았다.
이계림 기자 cckcr7@hanmail.net
이계림 기자 cckcr7@hanmail.net